스마트폰에 의지[권대정 기자 2018-01-06 오후 7:24:19 토요일] djk3545@empas.com
500년후 바보가 된 인간들 Idiocracy
2006년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 이디오크라시. 500년 후 인간의 지능이 크게 낮아진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렸다. [영화 이디오크라시]
인간의 지능은 과연 계속 진화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재밌는 답변을 해주는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2006년 미국에서 개봉한 ‘Idiocracy’입니다. ‘Idiot(바보·멍청이)’와 ‘Democracy(민주주의)’의 합성어죠. 그렇습니다. 바보들만 남은 세상이란 뜻입니다. 풍자 작가로 유명한 마이크 저지가 메가폰을 잡았고, 코미디 영화의 대부인 루크 윌슨(조 바우어 역)이 주연을 맡았습니다. 잠시 동안 흥미로운 영화 속 세계로 들어가 보시죠.
"고학력 여성 출산기피, 열성인자만 유전" 영화에선 미래 인간 IQ 80 이하로 떨어져
덴마크 연구 "스마트폰 사용, 지능 하락" 문명발전으로 IQ 향상' 플린법칙' 깨져 이미지·동영상 중심 미디어 소통도 원인
"언어의 한계는 인식하는 세상의 한계" 책·글자 멀어질수록 논리·추상력 떨어져
2005년 미국은 군부대 안에서 비밀 실험을 합니다. 바로 냉동인간을 만드는 거죠. 위험한 프로젝트이다 보니 어느 누구도 선뜻 지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가장 별 볼일 없는 병사, 소위 ‘고문관’으로 통하는 조 바우어가 주인공으로 뽑힙니다. 이름부터 유명 미국 드라마 ‘24시’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최고의 정예 요원 ‘잭 바우어’를 패러디했죠. 조는 1년만 잠들었다 깨면 된다는 설명만 듣고 곧바로 냉동수면에 들어갑니다.
영화 ‘Idiocracy’.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영상이 재생됩니다. [유트브]
그런데 예기치 못한 사고로 조는 1년 후에 깨어나지 못하죠. 시간이 흐르고 군 수뇌부는 냉동인간 실험 자체를 까맣게 잊고 맙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른 2505년의 어느 날. 실험실 인근에 산처럼 쌓인 거대한 쓰레기 더미가 무너지면서 조는 긴 잠에서 깨어납니다. 졸지에 500년 후의 미래로 오고 만 것이죠.
과연 미래는 얼마나 발전해 있을까. 조는 큰 기대감을 갖고 미래의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사람들이 모두 바보가 돼 있었습니다. 모든 게 자동화 돼 인간은 머리 자체를 쓸 일이 없는 세상이 된 거죠. 사람들은 오직 자극적이고 단편적인 것들에만 반응합니다. 고차원적 사고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소파에 앉아 감자튀김을 먹으며 TV를 보거나 게임에 몰두하고 있을 뿐입니다.
영화 속에서 인간은 자극적이고 단편적인 것에만 열광한다. 고차원적인 사고는 사라진지 오래다. [영화 이디오크라시]
조가 깨어나고 얼마 안 돼 오스카상 시상식이 열리는데 여기서 8개 부문을 휩쓴 작품은 90분 동안 사람 엉덩이만 보여주는 영화였습니다. TV 예능 중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한 남자가 몇 시간 동안 허벅지를 맞는 장면을 보여주는 게 고작입니다. 가장 압권은 백악관의 주인인데요. 포르노 배우로 유명세를 떨친 엽기적인 레슬링 스타가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올라 있었습니다.
이게 어찌 된 영문일까요. 영화에선 500년 후 미래가 디스토피아로 펼쳐지는 이유를 풍자적으로 설명합니다. 똑똑한 사람들은 자아실현을 위해, 또는 아이를 키울 만큼 사회가 아름답지 못하다고 느껴 출산을 기피합니다.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다산을 하고 아이들 교육에도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들은 TV와 게임에만 노출되고, 그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또 다시 같은 일이 반복돼 시간이 흐를수록 지능이 낮아졌다는 겁니다.
카우치 포테이토(couch potato). 소파에서 감자칩을 먹으며 TV를 본다는 뜻으로 TV 등에 빠져 고차원적인 일을 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단면을 비판하는 말이다. [네이버]
영화는 열성 유전자만 계승돼 500년 후엔 지구인의 평균 지능이 80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허구적 상상력이 가미된 영화라곤 하지만 일부 불편한 부분도 있습니다. 다소 우생학적이고 인종차별적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똑똑한 사람을 WASP(White Anglo-Saxon Protestant, 개신교를 믿는 전통적인 백인 중산층)로 묘사하거나, 그렇지 않은 이들을 히스패닉으로 설정한 부분 등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영화가 말하고 싶어 하는 요지는 명확합니다.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망치고 있다는 거죠. 영화 속에서 인류는 식량감소, 환경오염 등으로 파멸을 향해 가고 있지만 그 누구도 여기에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결국 지구상에서 가장 똑똑한 냉동인간 조가 미국의 국무장관을 맡아 이런 위기를 타개하려고 애씁니다. 과연 조는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할 수 있을까요?
‘Idiocracy’는 온갖 화장실 유머 코드와 미국식 저질 농담으로 가득한 B급 영화지만 감독이 보여주고 싶었던 풍자의 메시지는 매우 선명합니다. 정신없이 웃다보면 어느새 러닝타임이 훌쩍 지나버리지만, TV를 끈 이후에 뭔가 깊은 생각과 고민거리를 남긴다는 거죠. 요즘 사회가 흘러가는 모습을 가만 보고 있노라면, 우리 앞에 펼쳐질 미래가 영화의 설정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술 발전은 삶을 편리하게 만들었지만 인간이 머리 쓸 일은 갈수록 적어지고 있습니다. 과거와 비교해 우리가 외우는 전화번호, 노래가사는 얼마나 될까요. 운전을 예로 들면, 예전에 잘 찾아다니던 길도 요즘은 내비게이션 없이 잘 못 갑니다. 간단한 암산도 하기 귀찮아지면서 산술적 능력도 많이 떨어졌죠. 그럼 과거처럼 그런 걸 일일이 다 외우고 다녀야 하느냐, 물론 그건 아닙니다. 다만 중요한 사실은 과거에 비해 우리가 머리를 훨씬 적게 쓰고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디지털과 미디어 기술의 발전 때문에 사람의 지능이 떨어졌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덴마크의 코펜하겐대 토마스 티즈데일 박사가 군 입대 남성의 IQ를 조사했더니 1998년과 비교해 십 여 년 사이 1.5점 정도 떨어졌습니다. 네덜란드와 영국, 호주 등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얻었고요. 연구진들은 이 같은 지능 하락의 이유를 두 가지로 꼽고 있습니다. 첫째는 고학력 여성의 출산 기피, 둘째는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 사용의 확대입니다.
이런 결과는 ‘플린 효과(사회발전으로 정신적 활동 많아져 IQ가 오른다는 분석)’와 정반대입니다. 1980년대 뉴질랜드 심리학자인 제임스 플린은 193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평균 IQ가 10년마다 3점씩 오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 사이 영양 상태가 개선되고 삶이 풍요로워지면서 IQ도 크게 높아졌다는 설명입니다. 플린은 “진화적으로 인간의 지적 능력이 높아졌다기보다는 삶이 윤택해지고 머리 쓸 일이 많아지면서 IQ가 올랐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회가 더욱 복잡해지고는 있지만, 기술의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 개개인이 머리를 쓸 일은 점점 줄고 있죠. 앞으로는 더욱 그러할 것이고요. 언제든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으로 쉽게 검색을 할 수 있는 대신, 조용히 앉아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사색의 시간은 줄었습니다. 모든 정보를 간편하게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과거처럼 책을 찾거나 도서관을 가는 일도 없어졌고요.
인간의 뇌는 3중으로 이뤄졌다고 한다. 생존과 본능에 대한 부분은 파충류의 뇌, 감정에 대한 것은 포유류의 뇌, 이성과 관련한 것이 인간의 뇌다. [네이버]
그렇다면 머리를 안 쓴다는 건 정확히 뭘 의미하는 걸까요? 이는 언어 활동을 통한 인간의 사고 구조가 바뀌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뇌는 보통 3층으로 이뤄졌다고 하죠. 가장 깊은 곳에는 본능을 탐지하는 파충류의 뇌, 중간층엔 감정을 관할하는 포유류의 뇌, 제일 바깥엔 이성을 뜻하는 인간의 뇌가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파충류에서 포유류로, 또 다시 사람으로 발전해 온 게 아니라 위 3가지를 모두 갖고 있다는 거죠. 상황에 따라 어느 뇌를 쓰느냐가 달라지는 것이고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 번째 뇌, 즉 인간의 뇌가 기능하는 방식입니다. 인간의 뇌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전두엽이라 불리는 기관입니다. 전두엽의 가장 큰 역할은 언어를 관장하는 것이죠. 보통 전두엽이 모두 완성되는 시기로 남자는 30세 전후, 여자는 25세 전후라고 합니다. 특히 청소년기까지 전두엽에 필요 이상의 자극이 가거나, 덜 발전하게 되면 성년 이후 뇌의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죠.
그럼 왜 언어가 중요하느냐? “언어는 존재의 집”(마르틴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사고는 언어로 구조화 돼 있다는 뜻인데요. 이를 풀어서 말하면 인간이 세상을 인식하고 개념화하기 위해선 언어 없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깁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해 볼까요? 우리가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방식은 보통 2가지입니다. 첫째는 오감을 통한 생각입니다. 듣고 보고 느끼는 거죠.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은 시각적 이미지고요. 예를 들어 “퇴근 하고 무슨 밥을 먹을까”와 같은 단편적 생각은 머릿속에 이미지로 그려집니다. 때에 따라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의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매콤한 냄새가 상상되기도 하죠. 어쨌든 이런 생각의 가장 핵심은 이미지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겁니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중앙포토]
두 번째는 언어를 통한 사고입니다. “다음 주 기획안은 뭘 써야하지” 같은 복잡한 사고는 언어를 통해 이뤄집니다. 언어가 있어야 개념을 정의할 수 있고, 개념이 밑바탕 돼야 논리와 추론이 가능합니다. 즉,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사고의 본질적 특징은 언어라는 것이죠. 현대철학자들이 인간의식의 본질을 탐구하면서 언어 분석에 집중했던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생각을 표상하는 건 언어이기 때문에 언어가 달라지면 생각도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영어 문화권에 있는 사람과 한국어 문화권에 있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생각의 틀이 다르죠. 대표적인 게 존댓말입니다. 존댓말과 존칭이 발달해 있는 한국어는 말 자체로 위계서열이 나뉘죠. 초등학생도 한 학년만 높으면 상급생이 하급생에게 말을 놓습니다. 그러면서 권력구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