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광장에 울려퍼진 '미투'

한국여성대회서 성토 [권대정 기자 2018-03-04 오후 8:14:45 일요일] djk3545@empas.com
오는 8일 '세계여성의날' 맞아 34회 한국여성대회 열려
고등학생·교수 등 발언대올라 직접 '나도 당했다' 고백



“길을 가다가 선생님을 마주쳤을 때, 너무 무서워서 숨고 그랬는데 이렇게 속 시원하게 말하고 나면 제가 좀 당당하게 다닐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은선 양(18)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울컥한 감정을 집어 삼키는 듯 했다. 이 양은 초등학교 4학년 시절 담임교사에게 1년 동안 성폭력을 당했다. 평범한 남교사는 이 양의 몸을 함부로 안는 것은 물론 자신의 다리 위에 앉히는 등 성추행을 지속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은선 양이 주변 교사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무시되기 일쑤였다. 외부 상담 교사에게 ‘담임선생님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있는데 도와주세요’라고 부탁했을 때는 ‘선생님이 설마 그러시겠어.’라는 답변 밖에 들을 수 없었다.

이 양은 오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광화문 광장에 마련된 ‘3.8 샤우팅’(시민참여 말하기 발언대)에서 용기 있게 과거 성폭행 피해 경험을 고백했다.

한국여성대회 조직위원회가 마련한 ‘3.8샤우팅’ 무대(시민 참여 말하기 발언대)에서 이은선 양이 발언하고 있다 / 현민지 기자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의 주관으로 2018년 3.8 세계여성의날 기념 제34회 한국여성대회 “내 삶을 바꾸는 성평등 민주주의”가 열렸다. 이 양을 포함해 용기 있는 8명의 ‘샤우터’들은 광장에 모인 2000여명의 시민들 앞에서 발언대에 올라 자신들이 겪은 성폭력 피해를 직접 외치고, 성폭력과 성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제언을 했다. 청중들은 샤우터들의 고백이 끝날 때마다 ‘#METOO’ ‘#WITHYOU“가 적힌 팻말을 흔들며 박수와 환호로 답했다.


한국여성대회에 모인 2000여 명의 시민들이 ‘With You’와 ‘Metoo’ 가 적힌 피켓을 들고 발언을 경청 중이다/현민지 기자

이 양 다음으로 발언대에 오른 A씨는 사이버성폭행을 당한 피해를 털어놓으며 명백한 피해 사실에도 법적인 구제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역고소의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했다. A씨는 “4년간 사귄 전 남자친구가 이별에 앙심을 품고 텀블러 등 해외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나를 사칭하는 계정을 만들고 내 신상 정보를 올렸다”고 아야기했다. “전 남자친구가 해당 계정에 내 얼굴 사진과 모르는 여성의 나체 사진을 합성한 사진을 올리고 나를 사칭해 ‘하룻밤 상대를 구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고 피해 사실을 고백하는 과정에서 울먹이기도 했다.

A씨는 자신의 전 남자친구와 같은 가해자들이 범죄를 저지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못하는 이유는 허술한 신고시스템과 미약한 처벌 수준이라고 지적하며 “아직도 자신의 피해는 진행 중이다“라고 말하며 발언을 마쳤다.

성균관대 재직 당시 동료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던 남정숙 전 교수도 ‘샤우터’로 참여해 “여자들이라면 성폭력·성추행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과장되면 부장에게 당하고, 부장되면 사장에게, 사장되면 회장한테 당한다”고 여성들이 받는 성폭력 피해 상황을 꼬집었다. 남 전 교수는 “조직 내 성폭력 피해자에게 조직은 가해자를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피해에 대한 보상을 하는 등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날 광장 중앙에서는 3.8 샤우팅이 열리는 동시에 가장자리에서는 다양한 시민참여 부스가 운영돼 대회에 참가한 이들이 ‘미투 운동’과 ‘위드유 확산’을 지지하며 성평등한 사회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공유했다. ‘외칠 수 없는 미투, 이주여성을 응원합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직접 만들었다는 김유경 씨는 “이러한 운동이 앞으로 여성들이 이런 대회를 축제처럼 생각하고 많이 참여했으면 좋겠다”며 이번 대회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대회 중에 만난 고정희(51)씨는 여성 단체들이 미투 운동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일부 여론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고 씨는 “꾸준히 이야기 해왔지만 목소리를 무시해 왔다”고 분노하며 오히려 그동안 가해자들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인 탓에 피해자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덜 귀 기울인 것이 아니냐며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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