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웜비어 죽음 몰랐다' 미국 발칵

김정은 불신 고조 [권대정 기자 2019-03-01 오후 8:47:40 금요일] djk3545@empas.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토 웜비어에 대해 미리 알지 못했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거센 후폭풍이 일고 있다. 미 의회는 "미국인을 고문하고 살해할 수 있는 자유를 줬다"고 반발했고, 미 전·현직 관리들을 비롯한 국제 인권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말은 신뢰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차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로 끝난 지난달 28일(현지 시각) 베트남 하노이 JW 매리엇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웜비어 사건과 관련해 "김 위원장이 ‘나중에 알았다’고 했다"며 "워낙 큰 국가이고 많은 사람들이 감옥·수용소에 있다 보니 일일이 알 수 없다"고 김정은을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 나아가 "그(김정은)를 믿는다"고도 했다.

"그 어떤 정권도 잔인한 북한 독재자 만큼 시민들을 완전히 그리고 잔인하게 억압하지 않는다"던 그가 일 년여 만에 말을 바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웜비어의 부모를 국정연설에 초청해 북한 정권을 ‘도덕적으로 타락한 정권’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었다. 웜비어의 부모는 이후 김정은 정권이 아들을 살해한 것이라며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 ‘북한은 웜비어 가족에 5억113만달러(약 5609억원)를 보상하라’는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2월 27일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위해 베트남 하노이의 메트로폴 호텔에서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
미국 정치권은 분노로 들끓었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정권의 인권 탄압을 용인했다’는 질타가 쏟아져 나왔다.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나 김정은과 같은 ‘폭력배들(thugs)’을 믿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같은 당 마크 워너 상원 정보위원회 부위원장도 "김정은은 물론 알고 있었다"며 "이 뻔한 거짓말을 믿는 사람은 미국 대통령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애덤 시프 하원 정보위원장은 "혐오스럽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속한 공화당도 트럼프 대통령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케빈 매카시 하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나는 김정은이 어떤 지도자인지에 대해 잘못 판단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수전 콜린스 공화당 상원의원은 "김정은이 (웜비어 사건을 미리 알지 못했다는) 그 발언을 뒷받침할 구체적인 증거를 내놓았는지 알 수 없다"며 "김정은의 발언은 극히 믿기 어렵다"고 했다.

북한과의 협상을 담당한 전·현직 관리들도 가세했다. 특히 웜비어의 송환 협상을 직접 맡았던 조셉 윤 전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김정은의 말은 믿을 수 없다"며 "북한과의 협상에서 인권 문제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고, 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니키 헤일리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트위터에 "미국인들은 북한 정권이 오토 웜비어에게 행한 잔혹성을 알고 있다"고 썼다.

2017년 6월 13일 석방 이후 엿새 만에 숨진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가 북한 억류 당시인 2016년 3월 16일 평양 소재 최고 법원에 수갑을 찬 채 호송되는 모습. /연합뉴스
국제 인권단체와 인권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인권에 대한 모욕(slap on the face)"이라고 비난했다.

프란치스코 벤코스메 국제엠네스티 아시아태평양 담당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의 말을 의심하거나 미국 정보당국과 사실 관계를 확인하지도 않고 그대로 인정했다는 사실은 인권 측면에서 매우 우려스럽다"며 "북한처럼 모든 것이 감시대상인 국가에서 미국인 인질과 같이 고도로 민감한 사안을 김정은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인쇄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