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트로트의 새바람[권대정 기자 2019-05-04 오후 6:37:12 토요일] djk3545@empas.com
은행 잔액이 바닥났다. 발바닥 부르트도록 행사란 행사는 다 뛰어다녔는데 10년 차 무명 가수 수중엔 푼돈만 떨어졌다. 도돌이표 찍고 공과금, 집세, 카드 대금 결제일이 몰려왔다. 마음의 악상 기호는 데크레센도(점점 여리게)를 그렸다.
당장 먹고살아야 했다. 목[聲]으로 사는 인생이지만 손[手]으로라도 벌어야 했다. 눈 딱 감고 자존심을 접었다. 동대문시장에서 액세서리용 부자재를 샀다. 비녀, 뒤꽂이(머리 장식품)를 만들어 인터넷에 올려 팔았다. 국악 전공한 친구들의 주문이 밀려왔다. 부업으로 근근이 버텼지만 꿈만은 놓치지 않았다. 손으로 장식 붙이면서 트로트를 노동요 삼아 목을 갈고닦았다. 불과 몇 달 전 일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던 이 깜깜한 청춘에 눈부신 스포트라이트가 켜졌다. TV조선 '내일은 미스트롯'(이하 미스트롯)에서 최종 우승한 송가인(33). 미스트롯이 몰고 온 초강력 트로트 태풍의 눈이었다. "송가인으로 시작해 송가인으로 끝났다"고 할 정도. 인터넷엔 "나이 일흔에 '덕질(좋아하는 대상에 심취하는 것)' 합니다"라는 노년 팬부터 "언니 때문에 닭 될 뻔했어요. 닭살 소름"이라며 재기 발랄 '팬심' 밝히는 어린 팬까지 '송가인 앓이' 호소하는 이가 넘친다.
"노래해서 한 달 공과금 낼 돈이라도 벌면 행복하겠다 싶었는데 이건 기적이에요."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송가인이 개나리색 재킷에 폭 파묻혀 말했다. 화면보다 작고 말랐다. 발갛게 물든 볼, 탁 트인 음성이 봄바람에 실려 일렁거렸다.
트로트 아이돌, 지역감정을 녹이다
―'중장년의 아이돌'이 됐어요. 유튜브에 과거 영상 묶음 올리는 분도 많고요.
"인스타그램에서 백발 사진을 프로필로 내건 어르신이 메시지를 잔뜩 보내셔서 깜짝 놀랐어요. 순전히 저한테 말 걸려고 손녀한테 부탁해 계정 만들었다는 70대 팬이었어요. 같이 출연한 숙행 언니랑 미용실에 갔는데 배우 김혜옥씨가 먼저 알아보시더라고요. TV에서 보던 연예인이 제 팬이라니!"
―인터넷 팬카페 회원이 5000명 가까이 되던데요.
"8년 전 인터넷 팬카페를 만들었는데 몇 달 전만 해도 140명 정도였어요. 회원이 갑자기 확 늘어 친구한테 관리를 부탁했는데 매일 밤을 새운다네요. 며칠 전엔 집주인이 제 팬이 됐다고 전화하셨어요. 조금 뒤 부동산 사장님이 연락해서 5월 말 계약 만기인데 집주인이 천천히 나가도 된다고 하셨다더라고요(웃음)."
―"전라도에서 탑 찍어 불고, 서울로 탑 찍으러 온 송가인이어라~" 하는 사투리 인사말이 트레이드마크가 됐어요.
"그거 때문에 역풍 맞게 될 줄은 몰랐어요."
―역풍이라니요?
"지역색이 강하게 드러나는 바람에 '홍어 냄새 난다' '전라도 ×' 같은 악플이 떼로 달렸어요. 지역감정이 그렇게 심한 줄 몰랐어요. 며칠 전 경남 사천에서 행사가 있어 잔뜩 긴장하고 갔는데 웬걸요. 고향에서보다 더 반응이 뜨거웠어요. '지역감정 걱정했는데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는데 왈칵 눈물이 쏟아졌어요. '울지 마, 울지 마' 하던 관객들이 '지역감정 없어요. 그런 거 우린 상관없어요' 하며 같이 우시고…."
―노래가 갈라진 마음을 녹였네요.
"어떤 분들은 정치인도 못 한 경상도·전라도 화합을 송가인이 해줬다고 하시더군요. 팬카페에 지역별 카테고리가 있는데 회원들끼리 '여기선 정치 얘기 하지 맙시다' 하면서 서로 배려해요."
굿당까지 팔아 뒷바라지한 엄마
―어머니 권유로 미스트롯에 나왔다고요?
"현역 가수인데 일반인하고 붙어서 떨어지면 마이너스 되지 않을까 싶어 선뜻 결정을 못 하겠더라고요. 그런데 엄마가 느낌이 좋다면서 적극 권유하셨어요." 송가인의 어머니는 무녀(巫女)이자 국가 지정 무형문화재 제72호 진도 씻김굿 전수 교육 조교(인간문화재 전 단계)인 송순단(60)씨다.
―무녀의 딸, 어린 시절이 평범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엄마가 저를 낳고 신병에 걸리셨대요. 이유 없이 계속 아파 제가 돌 즈음에 신내림을 받으셨어요. 외할머니도 당골(무녀를 일컫는 전라도 사투리)이었어요. '무당 딸'이라 놀림도 많이 받았지만 단 한 번도 엄마를 부끄러워한 적은 없어요. 씻김굿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달래 좋은 곳으로 보내주는 일이에요. 정말 좋은 일인데 왜 부끄러워해야 하나, 천대하는 사람이 이상한 거다 생각했어요."
―어머니의 삶에 영향을 받았나요.
"관 앞에 병풍을 쳐놓고 오후 6시부터 새벽 두세 시까지 소리를 하세요. 판소리로 치면 7~8시간 완창하는 거예요. 소리꾼이 평생에 한두 번 할까 말까 하는 완창을 시도 때도 없이 해요. 엄마가 늘 '죽을 각오로 해라' 하고 말해요. 미스트롯 때도 그랬고요. 엄마가 남들 앞에서 엎드려 굿할 때 어떤 심정일까를 떠올리면 저도 이 악물게 돼요."
―노래에 재능 있는 건 언제 알았나요.
"고향이 진도예요. 강강술래, 씻김굿, 다시래기(초상집에서 유족의 슬픔을 덜어주려 벌인 장례 놀이), 들노래…. 다 진도산(産) 문화재죠. 진도 와서 소리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어요. 밭에서 일하는 할머니들이 다 명창이에요. 육자배기, 흥타령 줄줄 해요. 그런 환경에서 자랐죠. 중2 때 들노래 문화재 선생님이 제 재능을 알아봐 주셨어요." 이후 강송대 인간문화재에게 남도 민요를 배웠고, 광주예고로 진학해 박금희 명창에게 판소리를 사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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