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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들이 노량진 시장을 못 떠나는 이유

명도집행 강행 [권대정 기자 2018-11-22 오후 1:22:30 목요일] djk3545@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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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굴착기 파쇄장치 앞에서 차숙자(73)씨를 만났다. 그는 다짜고짜 소리쳤다. “기자들은 다 쓰레기야. 안 믿으니까 저리 가.” 기댈 곳도, 믿을 곳도 없는 사람의 경계심이었다.

차씨는 40년 넘게 시장에서 삶을 이어왔다. 가게 이름은 ‘영도 해파리’. 노량진시장 17번 기둥 뒤에 위치한다. 이름처럼 주로 해파리와 석화, 바지락을 취급한다. 연탄난로 앞에 차씨와 나란히 앉았다. 전기가 끊어진 시장엔 한기가 흘렀다. “독하게 타줄까? 연하게 타줄까?” 기자와는 말도 섞기 싫다던 그가 ‘믹스커피’ 한 잔을 건넸다.

차씨는 ‘9남매 종갓집의 맏며느리’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자식 둘을 노량진에서 키워냈다. 올해 마흔일곱 살이 된 막내아들은 엄마와 함께 일한다. “이웃들이 우리더러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라고 했는데, 어쩌다 온 가족이 데모쟁이가 됐다.” 엄마와 아들은 멋쩍게 웃었다.
차숙자(73)씨가 용역에 밀려 쓰러지면서 정신을 잃었다. 119구급대가 도착해 차씨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그래서 진짜로 원하는 게 뭐예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원하는 것 없다. 어차피 죽으면 다 두고 떠날 텐데, 아무 미련 없다. 다만 ‘장사 잘할 수 있도록 우리(수협)가 알아서 만들어주겠다’던 약속을 지켜달라는 것이다.” 새롭게 만든 시장 건물을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 차씨는 따뜻한 ‘새집’에서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 있었다. “신시장에 처음 구경 갔을 때 엄마의 표정이 금세 슬퍼졌다. 시장 같지 않은 시장이었다. 개발이 끝난 시장에는 ‘코끼리를 냉장고에 욱여넣을 방법을 고민하는’ 효율성만 남아 있었다.” 차씨 막내아들의 설명이다.
수협의 명도집행이 재개되자 상인들이 굴착기 위에 올라섰다.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손님들이 어둠을 뚫고 찾아왔다. 대부분 단골이었다. “지금껏 장사하면서 원칙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단골손님이 늘었다. 지금 시장이 이 지경이 됐어도 그분들이 찾아온다.” 원래 노량진 시장에서는 3년마다 추첨으로 자리를 바꿨다. 목 좋은 자리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목 욕심 때문에 이전을 거부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잃어버리는 지점이다. 주로 식당 운영주를 상대로 장사하는 차씨의 경우, 자리에 대한 의존도가 낮다.
“종일 일하고 잠깐 자고 나와서 다시 일한다.” 차씨는 새벽 1시에 출근해 오후 6시쯤 집으로 돌아간다. 그는 “영세한 삶이지만 아들과 함께 일하는 시간이 좋다”고 말했다. 수협은 높아진 임대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상인들의 평균 연간 매출액 약 3억원이라는 ‘팩트’를 자주 인용한다. 그러나 ‘평균 매출액’은 상인들 간 소득 격차 수준이나 순수익을 보여주지 않는다. 시장에 남은 이들은 몸소 ‘영세’함을 증명해야하는 처지에까지 이르렀다.
수협의 명도집행이 재개되자 상인들이 굴착기 위에 올라섰다.
당뇨 합병증을 앓고 있는 차씨는 일주일에 세 번 중앙대 병원을 찾아 투석 치료를 받는다. 이틀째 굴착기를 두고 수협과 다툼을 벌이던 지난 20일 오전에도 그는 병원에 다녀왔다. 이날 오후 그는 땅바닥으로 밀려 쓰러지면서 정신을 잃었다. 119구급대가 출동해 응급조치를 취했다. 한참 이따 깨어난 차씨는 다시 어두운 시장으로 돌아가 손님을 기다렸다. ‘내 몸보다 물건을 아낀다’던 그의 손은 퉁퉁 부어있었다. 엄마를 지키던 아들은 허리를 삐끗했다.
행정에서 ‘상생’은 익숙한 단어다. 도농상생, 상생협력, 상생번영, 상생모델. 다만 말처럼 ‘같이 살자’며 손 내미는 행정은 드물다. 노량진 수산시장이 그렇다. 수협은 ‘수산업협동조합’의 줄임말이다. ‘제발 함께 살자’는 노량진 시장 상인들에게 ‘협동조합’이 내민 것은 손이 아니었다.
험악해진 분위기 속에 ‘명도집행’이 이어졌다. 상인 몇몇은 넘어지면서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기자회견 아무리 해봐라, 그 말 누가 들어주는데?” 이oo 수협 팀장은 내내 상인들을 향해 막말을 쏟아냈다. 세 치 혀로 희롱했고, 미소 띤 얼굴로 조롱했다. 험악해진 분위기 속에 ‘명도집행’이 이어졌다. 상인 몇몇은 넘어지면서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용역 직원’이라 불리는 이들은 출처 모를 분노를 표출했다. 법은 명도집행을 승인했을 뿐, 상대의 몸을 걷어차고, 존재를 모욕하고, 지난 삶을 조롱해도 좋다고 하지는 않았다.
안재문 수협노량진수산 대표이사는 다음날 기자회견에서 “모든 문제는 옛시장 건물을 불법 점유한 상인들로부터 비롯했다”며 “더 강력한 구 시장 폐쇄 조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협의 명도집행이 재개되자 상인들이 굴착기 위에 올라섰다.
“시장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가까운 곳에 구청과 경찰서가 있다. 그러나 서장이든 구청장이든 이곳에 더 이상 발을 딛지 않는다.” 차씨는 푸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1년 10월 시장에 당선되고 첫 출근길에 노량진 새벽시장을 가장 먼저 방문했다. 박시장은 “새벽녘에 일하는 여러분이 자랑스럽다”면서 “책상 머리에서 연구하는 것도 좋지만 현장에서 경청하고 소통하면서 시민들의 어려움을 시정에 반영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구시장 상인들은 지난 12일 시청에 찾아가 연좌 농성 끝에 박 시장을 만나 도움을 청했다. “인권을 보장해 달라.” “서울시 미래유산인 노량진 시장을 지켜달라.” 박 시장은 약 5분 동안의 대화에서 “아무런 권한이 없다는”말만 되풀이했다고 한다. 상인들은 묻는다. “우리의 삶,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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