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대통령들의 산업화와 민주화 공로 인정은
국가 지도자 되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1997년 대통령 당선 다음날 바로 이·박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던 것과 달리, 지난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이후 야당의 주요 정치인들은 이·박 전 대통령의 묘역 참배를 피해왔다. “두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찾는 것 자체가 과거 정권의 독재적 행태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야당 지도부 자격으로 이·박 전 대통령 묘역을 찾는 건 문 대표가 처음이다. 중도적 성향의 김한길 대표도 이·박 전 대통령의 묘역 참배는 하지 못했다. 다만, 안철수 전 대표만이 야권 일각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의 합당 이전 이·박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었다.
문재인 신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9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참배를 하고 있다.

문 대표도 대선 패배 이후 2년여만에 그런 깨달음을 얻게 된 것 같다. 문 대표는 9일 현충탑에 참배한 뒤, 방명록에 “모든 역사가 대한민국입니다. 진정한 화해와 통합을 꿈꿉니다”라고 적었다. 그리고 기자들을 만나 “참배를 둘러싸고 갈등하는 것은 국민 통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갈등을 끝내고 국민 통합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늘 참배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날 안철수 전 대표도 문 대표와 함께 현충원을 찾았다는 것 또한 의미가 깊다. 야당의 고질적 계파 갈등부터 치유돼야 진실한 국민 통합에 나설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1997년 12월19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자와 부인 이희호 여사가 국립묘지를 찾아 분향하고 있는 모습.

하지만 이들이 정말 국민의 마음을 얻어 나라를 이끌고 싶다면, 야당의 첫 집권을 가능하게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열린 자세부터 배워야 한다. 김 전 대통령은 1997년대통령 당선 다음날 바로 이·박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했다. 김종필·박태준 전 자민련 총재와 함께였다. 좌파와 우파가 손을 잡고 정권을 잡은 뒤, 과거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며 당시 IMF 위기를 맞은 국민들에게 ‘통합으로 힘든 시절을 극복하자’는 메시지를 보냈던 것이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 집권 시절 정치활동 금지, 가택연금, 납치 등을 당하며 고난을 당한 바 있어 이런 화합의 메시지는 국민들에게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
문 대표도 이날 이·박 전 대통령 묘역 참배로 최소한 좌우로 갈라진 국민 통합에 나설 만한 자격이 있는 정치 지도자라는 사실을 알렸다. 내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런 신조를 유지한다면 당과 야권은 물론 국민 전체의 화합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가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양 날개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인정하는 건, 나라를 책임지는 사람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다.